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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가족심리상담 , '엄마를 용서할 수 없어요'

p&cmaum 2024. 9. 27. 11:34

 

엄마를 용서할 수 없어요

 

.박노해(마음)

 

남편이 벙어리다.

남편은 말이 없다. 답답해서 뭐라도 말 좀 했으면 싶은데 침묵으로 일관한다. 꼭 엄마에게 야단맞는 아이처럼 말이다. 이렇게 산지 14년째다. 남편은 정말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난 말없는 남편이 너무 답답해서 이제는 미칠 지경이다. 남편과 14년 동안 살면서 난 말하는 사람이었다면 남편은 말을 듣는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남편은 상담자처럼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경청하는 듯 보이지만 반응이 없으니, 이건 스펀지와 같다. 난 마치 앵무새가 된 마냥 허공에 대고 혼자 소리치고 있다. 하지만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남편은 착한 사람이다. 결혼할 당시 남편을 보며 가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난 결혼하여 나만의 가정을 이루려는 목표가 있었다. ‘행복하고 따뜻한 가정’, 그런 가정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더 없이 조용하고 성실하며 착한 남편을 믿고 결혼을 선택했다. 그런데 남편은 위기가 닥치거나 갈등이 생길 때에도 침묵을 지키고 어떤 해결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답답한 난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게 되고, 이후에는 폭발하였다. 결국 남편은 아무런 말없이 자리를 피하고 난 대성통곡을 하는 그런 과정이 악순환 되었다.

딸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말을 듣지 않는다. 앞으로 입시가 지척인데 걱정도 없고 공부는 아예 재낀 모양이다. 저도 걱정되고 계획도 세워 뭔가 결과를 보여주고 싶을 텐데 천하태평이다. 어찌된 것이 내가 수험생이 된 기분이다. 아이가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처음 10분은 느긋하게 기다린다. 그러나 30분이 넘어서면 날 골탕 먹이려고 한다는 생각에 결국 폭발하고 만다. 근래에 와서 점점 심해지니, 아이의 행동이 용납이 안 되고 옆에서 수수방관하는 남편에게 불똥이 튀게 된다. 여지없이 눈치보고 어쩔 줄 몰라하며 허둥대는 남편의 모습이 사람을 더 폭발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렇게 남편에게 한바탕 뿜어내고 나면 남편도 안쓰럽고 불쌍한 사람인데......, 그래도 우리가족을 위해서 자기도 한다고 하는 것인데 내가 너무 몰아붙인 것 같아 미안하고 측은한 마음이 든다. 이런 세월이 14년이라니.

 

어머니가 용서가 안 된다.

상담을 시작하고 회기수가 길어지면서 친정어머니가 자꾸 떠오르고 괴로워져 상담이 부담스럽고 종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의 갈등문제로 상담을 시작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자꾸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애써 외면하고 회피하며 어머니에 대한 감정과 기억들을 잊어왔건만, 혹을 때려다 도로 붙인 것처럼 상담이 고통스럽다.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던 터라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떠올리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무거운 짐을 힘겹게 지고 가는 느낌이다. 우리형제는 7남매다.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아들을 못 낳는다고 늘 잔소리와 구박을 일삼았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서러움과 푸대접을 받았다. 할머니가 어머니를 구박할 때면 아버지는 뒷방에서 헛기침만하시고 모른 척 외면하였다. 그런 아버지가 얼마나 비겁하게 느껴지던지, 정말 그런 환경이 싫었다. 우리들은 그런 지긋지긋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마다 알아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편이었다. 언니들은 다들 사회적으로 성공한 편이다. 그러나 다들 형부들과 사이가 불편하고 갈등이 심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늘 씩씩한 CEO같은 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부모님 모시고 무능력한 남편 보필하며 7남매 키우자면 씩씩하지 않아도 씩씩한 척이라도 해야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난 어머니 앞에서 늘 부족하고 작은 아이였다. 어머니의 핀잔과 비난 섞인 말투와 표정,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한없이 작아지는 내가 너무 싫다. 내가 중1이 되면서 부모님은 결국 이혼을 하셨다. 차라리, 잘했다는 생각도 했지만 아버지가 야속했다. 어머니는 우리들 공부는 꼭 시킨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한 번씩 힘든 환경이 감당하기 어려울 땐, 그 화를 나에게 풀곤 하였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난 어머니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반항이다. 어머니는 우리 형제가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해주기를 바랬지만, 어머니의 기대에 맞추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과 같이 부담이 되었다. 이후부터 난 어머니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회피를 했던 것 같다.

어머니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고 살았다. 그런 세월이 25년인데....... 이제 다시 그 감정이 되살아나다니, 어머니를 용서할 수가 없다.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기대가 있었다. 그냥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정말 열심히 살면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열심이란 전제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상담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지만 난 어린아이처럼 순진했던 모양이다. 너무 순진해서 세상을 아이처럼 바라본 모양이다.

 

남편을 통해서 나를 만나다.

남편은 말이 없다. 내 눈치를 보는 것이다. 또 딸은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 사실 남편과 딸이 나에게 하는 행동은 내가 친정어머니에게 하던 행동이다.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내가 한 만큼 돌아온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난 어머니와 다른 인생을 살고 싶었다. 난 정말 따뜻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만든 가정은 대화단절에다가 한 번씩 폭발하는 그런 가정, 그 과정을 거친 후에야 몇 달간의 평화가 겨우 유지되는, 너무 실패한 가정이다. 우리에게 따뜻함은 없다. 오로지 불안과 갈등, 그리고 침묵뿐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나로부터 출발한다는 걸 알겠다. 남편을 통해서 이제 조금 나를 알게 되었다.

남편은 말은 없지만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나 든든하지 못하다. 난 따뜻한 가정을 이루려면 착한학생처럼 그렇게 성실하고 바르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살고 보니, 바르거나 성실하거나 착한 것 보다 삶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사리분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겠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실천은 어렵다. 어떻게 중심을 잡고 어떻게 판단을 해야 좋을지 갈팡질팡한다. 어머니는 나에게 늘 부족한 아이라고 면박을 주었지, 인정이나 격려, 칭찬은 해주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가 너무 야속하다. 어머니를 용서할 수가 없다. 나에게 너무 잔인했던 어머니.......

배우자를 만난다는 것, 그 의미는 배우자를 통해서 자신의 자아를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속에는 외면하고 거부하고 싶은 자신의 부정적인 자아가 존재한다. 이러한 자아의 내면을 살펴보게 되면 우리의 억압된 상처, 결핍된 욕구와 같은 무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무의식을 대면한다는 것, 이것은 자신의 상처와 부족함을 직면하고 자신의 참마음을 만나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외면하고 싶은 상처받은 마음, 그 마음을 직면할 때 우리는 이해와 용서를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상처받은 부모라는 산을 넘어서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며, 점차 삶이 깊어지는 시간으로 변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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