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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 '술집에서 만난여자'

p&cmaum 2022. 10. 28. 11:11

                                                                                 술집에서 만난 여자


                                                                                                                                                                  글. 박노해(마음)

“여러분은 첫 직장이 어떤 곳이었나요? 대기업, 전문직, 유명인 아니면 부모의 많은 유산으로 안정된 시작이라면 어떨까요? 나열된 직업은 꿈같은 이야기인가요?”

어떤 사람은 좋은 직업에 종사하고, 또 어떤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직업을 전전하기도 한다. 그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각자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꿈도 자신감이 부족해서는 갖기 어렵다. 따라서 직업에 관련된 핵심은 각자의 마음 속 내재된 자존감, 즉 자신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신감이 부족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상처받은 마음 때문에 자신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기 때문이다. ‘난 부족한 사람이야.’, ‘자신감이 부족해.’, ‘내가 뭘 잘할 수 있겠어.’ 등과 같이 자신을 믿지 못한다. 자신에 대한 불신감은 우리를 파멸에 길로 인도한다. 길을 잃고 방황하며, 결국 우리의 삶을 불신하게 한다. 불신이란 놈이 우리의 적이나 다름없지만 우리는 불신을 믿고 사랑한다. 자기를 불신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힘에 끌리듯 불신 앞에 주저 않고 만다. 그 힘은 우리를 너무 쉽게 무너트리고 굴복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방황을 통해서 꼭 한 가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믿음이란 숙제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자기이해와 수용을 거쳐 우리는 성장하게 된다. 이것이 자기해방이다.

자기를 불신하고 방황하는 여자이야기를 통해서 자기해방에 다가서 보자.

내 첫 직장은 다방이다.

그녀가 세상을 처음 만난 곳이 다방이다. 그곳에서 사회를 처음 겪고 맛보았다. 당시 열여섯이었던 그녀에게 희망이나 꿈, 이런 말들은 사치에 불과했다. 그녀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그녀의 엄마는 그녀와 동생을 두고 가출을 했다.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는지. 마음속으로 엄마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몰라요.”

그녀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간다.

“엄마가 가출하고부터 아버지는 술에 빠져, 우리를 돌볼 생각을 하지 않았죠. 술뿐이면 다행이게요. 엄마에 대한 원망을 우리에게 화풀이 했죠. 욕은 물론이고 폭력까지 서슴지 않았어요. 이후부터 아버지가 술을 마실 때면 난 의례 친구 집에서 잠을 잤죠. 무서웠어요.”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도 고등학생이 되면 떠나야지 굳게 마음먹었던 그녀는 바람처럼 집을 등지고 말았다. 처음엔 작은 도시에서 닥치는 대로 알바도 하며 돈 되는 일은 뭐든지 하고 살았다. 그것도 마땅치 않아 큰 도시로 갔다. 집이 싫었다. 아버지에게 벗어나고 싶었고 반항도 무가치한 일이었다. 그녀가 말을 이어간다.

“큰 도시로 옮기고 다방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어린 철부지였던 저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다방은 가장 적당한 일자리였지요. 세상에 대한 원망이었을까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세상을 향해 내 몸과 마음을 던졌다고 생각해요. 내 인생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죠. 그 시간들은 가혹한 저주와도 같았어요. 열일곱에 순결을 잃었죠. 중요치 않았어요. 밤이 제일 싫었어요. 일이 고될수록 엄마생각이 떠올랐죠. 전 아무생각 없이 살기 위해서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지요. 멍 때리고 살았어요. 열여덟에 다방에 찾아오는 오빠와 동거를 시작했어요. 오빠도 가출했고 서로가 의지가 되었죠. 그 오빠도 18살에 고향을 떠나 오토바이 중국집배달에 안 해본 일 없었죠. 그래도 6개월은 행복했어요. 달세 방에서 전세방도 마련하고 전자제품도 사고 따뜻한 가정을 일군다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오빠는 배달을 그만 두고 집에서 빈둥거리기 시작했어요. 술로 세월을 보내고 폭력까지 일삼았죠. 아버지의 술주정 때문에 가출했는데 오빠의 술버릇을 참고 살수는 없었어요. 전 떠났어요.”

술집에서 남편을 만났다.

그녀의 결정은 단순하고 쉬워보였다. 그녀의 결정은 절박한 삶에서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점점 더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번엔 딴 도시로 왔어요. 주점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갈수록 수렁으로 빠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번은 이렇게 생각했죠. 점점 더 저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점에서 일할 때는 남자손님들을 쥐락펴락 하는 재미가 있었죠. 세상이 저를 거칠게 만들었어요. 2차를 나가는 과감한 허세를 부리기도 했어요. 그때 제 나이가 스물두 살이었지요.”

  그녀는 지쳐가고 있었다. 세상에게 저항한다고 누가 알아주겠는가 말이다. 결국 그녀 혼자 벌이는 싸움이다. 그녀도 마음속으로 사랑을 원한다. 사랑을 원하지만 요구할 용기와 기술이 부족하다.

“술과 담배로 건강을 잃어갈 즘 지금 남편을 만났어요. 남편은 내가 술집에 일하는 사실을 몰라요. 아이 둘이 태어난 지금도 말이죠. 굳이 남편에게 밝히고 싶지 않아요. 밝히지 않는 것이 남편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해요.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죠. 간혹 남편은 돈 욕심이 생길 때 제게 맞벌이를 기대하지만 그 점만 빼면 괜찮아요. 그렇다고 남편과 사는 것에 만족한다는 뜻은 아니고요. 남편이 곁에 있지만 다른 남자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 늘 다른 남자를 생각해요. 그리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죠.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는데 아직도 옛 습성을 버리기가 쉽지 않은가 봐요.”

그녀가 남편의 요구에 맞추고자 한 건 아니지만 얼마 전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고 떡집 아줌마의 소개로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답답한 마음에 성당에 가면 마음이 좀 편해지려나, 불안이나 다른 남자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려나, 하는 마음에서 다닌 것이다. 그렇게 1년을 다녔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다, 눈물이 코 등을 타고 바닥에 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굴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처럼 큰 소리로 말이다. 그녀에게 변화가 시작되었다.

나를 찾았다.

그녀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의식은 꿈꾸고 있었고 그녀를 깨운 건 아픔과 상처의 노크소리였다. 깨고 보니, 아픔과 상처는 허구였고 여운에 잠깐 눈시울도 붉혔지만 분명 가짜였다. 그녀에 곁에 사랑을 품은 배우자가 있었다. 성당에 다니면서 처음엔 소원을 빌었다. 내가 불안해지지 않도록 혹은 다른 남자생각이 들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지나온 삶을 회상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삶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왜 그렇게 불안한 시간들이 주어졌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문이 들고 혹 내가 그 고통 속에서 깨달아야할 것이 있다면? 이 시간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기도의 내용이 달라졌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내 안에, 내 마음 속에 그렇게 사랑에 목말하고 허 우적 되며 몸부림치는 자신을 느꼈다. 놀랐다. 이렇게 애처로울 수가? 너무나 안쓰러울 수가 없었다. 그 자신이 말이다.

그러한 통찰과 깨달음도 얼마가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불안해하며 탐닉했다. 그러다 정말 이번엔 돌아갈 수 없는 일들을 맞았다. 남편과의 돈 문제로 빚어진 이혼갈등이었다. 친구가 걱정이 되셨는지 상담을 권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시골이라 상담센터가 없었다. 결국 먼 거리를 오가는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상담을 통해서 더 분명히 자신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방황은 엄마의 사랑을 찾아 헤매는 갈구였다. 결국 그녀는 어머니에게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고 늘 부족한 딸, 엉뚱한 딸, 산만한, 고집 센 딸이었다. 그녀는 방황하고 반항하며 자신 아픔을 알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방황 끝에 그녀가 만난 하나님은 그녀를 온전하게 수용해주고 포용해주는 존재였다. 언제나 아픔과 상처가 그녀의 마음에게 속였다. 상처는 어둔 그림자가 되어 휘감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좌충우돌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삶이 조금씩 제자리로 회복되는 느낌이다. 종교에 대한 믿음이 더욱 깊어질수록 그녀의 생활이 안정되어 갔다. 그녀는 배속 아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이 아이에게 더는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든다. 지금까지 시련과 갈등이 그녀를 찾는 시간이 되었다.

자기통찰이 구원이다.

고난과 시련은 누구나 고통의 시간이다. 그러한 고통의 과정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사람, 그들은 축복받은 자들이다. 많은 사람은 삶을 통하여 몸과 마음이 더럽혀진다. 또 그 과정을 통해서 마음은 온갖 탐욕과 상처, 갈등, 고통을 겪지만 결국 한낮 먼지로 사라지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너무나 절박하고 애절했던 그 삶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다.

내 인생의 갈등, 그것이 배우자의 잘못이거나, 자녀의 문제이거나, 부모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실은 나의 문제이며 나의 삶이다. 내가 내 삶에 대해 관심이 부족했고 내 삶을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씩은 부모도 되고, 부부도 되고, 자식도 되는 법이다. 자녀라고 부모를 원망하고, 부모라고 자녀를 원망하는 것, 부부라고 배우자를 원망하고, 억울하다고 세상을 원망하는 것 그것은 내 마음 속 나의 상처에 대한 자기원망이다. 사랑을 받고 성장하는 것은 아이에겐 너무 중요하고 소중하다. 또 그런 사랑이 그 아이 인생의 근간이 된다. 부모의 부족함으로 그런 따뜻함과 최소한 안정이 부족했다면 나는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 따뜻하고 안정된 부모가 되도록 자신을 돌아보고 챙겨야 할 것이다.

사랑을 갈구하며 방황했던 사례에 등장한 그 아이가 사랑을 얻겠다고 다방에서 웃음을 팔고 남자들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고 그것도 관심이라고 생각하는 초라함은 절규였다. 그 아이가 방황하고 절규했던 시간은 고행의 과정이며 시련의 과정이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참된 자신을 찾고 있다. 그녀는 투박한 말투로 “전 더러운 여자예요. 그래서 더 저를 용서할 수 없었어요.” 그녀가 사랑을 얻기 위해 방황했던 삶, 그 시간 속에서 그녀는 몸을 파는 삶을 선택했다. 더렵혀진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고 싶었지만 미워해야하는 양가감정(ambivalence)을 느꼈던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갈등하지 않는다. 자신은 더러운 여자가 아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거룩한 영혼의 소유자가 되었다. 종교적 관점에서 영혼을 구원받은 자다. 그러니, 누가 그녀에게 더 이상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녀는 더 없이 안정되고 당당한 여자가 되었다. 이것 자기해방이고 부부해방의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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