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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차상숙심리이야기
부산심리상담 , '좋은 아들, 나쁜 며느리' 본문
좋은 아들, 나쁜 며느리
글.박노해(마음)
마마보이 남편과 살기 참 힘들다.
남편은 좋은 아들이다. 늘 어머니 생각만 한다. 어찌 보면 참 효자다. 남편은 지난 주말에도 어머니를 뵙고 온 후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한 마음 착한 아들인 남편을 볼 때면 나는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숨이 턱에까지 찬다. 어제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들어주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이젠 정말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연애할 때는 나를 많이 배려해주는 자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결혼한 이후부턴 나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시어머니 생각밖에 모른다. 난 참다 참다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우리도 주말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공원에도 함께 가고, 펜션 빌려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여행도 가자고 말이다. 그랬더니, 남편은 지금 어머니는 혼자서 밥해 드시고 외로운 세월 보내고 있는데 우리만 세월 좋은 소리 하지 말라며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는 거였다.
남편은 참 효자다. 직업이 의사라 돈도 잘 번다. 어머니께 철마다 보약은 물론 용돈, 생활비도 꼬박꼬박 챙기고, 지난달에는 친구들과 여행가라며 유럽여행 최고급패키지 상품을 예약해서 보내드렸다. 정말 독한 남자다. 요즘 들어서는 나이 들면 복수해주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복수도 그냥 복수가 아니라, 정말 잔인하게 되갚아주고 싶다. 남편이 두 손 두 발 싹싹 빌며 애원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나는 나쁜 며느리가 되었다.
결혼 초에는 남편이 효자라는 것을 좋게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도 남편의 뜻에 따라 매주 한 번씩 찾아뵙고 어머니의 건강도 입맛도 챙겼다. 어머니 생신에는 옷과 구두, 지갑도 명품으로 해드렸다. 남편은 그렇게 해드려야 마음이 편하단다. 자기 어머니에게 무슨 큰 빚이라도 진 것처럼 말이다.
결혼하고 머지않아 남편에게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레지던트 과정 때 진 빚이었다. 그게 집을 사거나 재테크 때문이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편에게 빚의 내역을 물었더니, 어머니께 드릴 선물, 보약과 철마다 여행 보내 드리기 위해 진 빚이란 것이다. 아차, 실수했구나! 내가 결혼을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뒤통수를 때렸다.
그때부터 우리부부의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정말 처절하리만치 극심한 부부갈등을 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요지부동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걱정에 더욱더 안타까워했고 늘 어머니 생각밖에 없었다. 시누이, 시동생의 결혼식에 쓸 예단과 예물 준비도 남편의 몫이었다. 남편은 그걸 당연하다 생각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부모에게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라고 여겼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아들이 무슨 앵벌이도 아니고 시어머니는 영락없는 포주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남편은 어머니의 자식으로서 당연지사 부모를 위해 보답해야 한다고 했고, 그래서 우리 부부사이 금실은 깨지고 말았다.
난 나쁜 며느리가 되었다. 명절에도 난 시댁에는 안 간다. 남편은 이혼하자고 한다. 어머니에게 잘할 수 있는 아내를 얻고 싶단다. 이혼은 절대 못한다. 누구 좋으라고 한단 말인가? 같이 살면서 남편이 나에게 준 상처만큼 두고두고 되갚아줄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孝道)하면 좋은 아들일까?
부모에게 효도한다고 좋은 자식이 될 수 있을까?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효도라고 다 같은 효도는 아니다. 효도라면 가족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효도가 좋다. 위의 사례에서 남편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은 연민이고, 사랑에 대한 갈증이다. 부모에게 효심이 강한 사람들, 그들의 효심에 대한 동기를 우리는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을 지닌 나라이다. 유교에서는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해야한다고 가르친다. 그렇다. 부모에 대한 효심은 예(禮)와 도리(道理)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 효심이 사랑에 대한 갈증이나 집착, 부모의 노고에 대한 연민과 측은지심(惻隱地心)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러한 효심은 또 다른 갈등과 상처를 남긴다.
어떤 남편은 주말마다 부모를 찾아뵙고 부모의 건강을 살핀다. 또 부모가 좋아하는 음식을 대접하고 여행을 보내드리는 등 정성이 지극한 반면, 현가족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부모가 자신을 이렇게 키워주고 성장시켜주었으니, 그들은 부모를 위해 주말정도는 당연히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효심은 정작 자신의 자녀가 적절한 시기에 또래관계 경험을 통하여 꼭 배워야할 부분을 놓치게 할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소외되는 원인이 된다. 자녀뿐이겠는가? 아내의 경우, 좋게 말해서 아내고 며느리지, 시부모와 결혼한 것도 아닌데 늘 부모생각만 하는 남편과 산다면 남편을 시부모에게 빼앗긴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부부간의 정은 언제 나누며 어떻게 위로하며 산단 말인가? 하지만 남편은 아내도 자신처럼 부모를 생각해서 효도하길 바라며, 또한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기를 기대한다.
여자들은 그렇게 10년을 참고 살다가 마지막 선택으로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 여기까지 와도 남자는 ‘여자가 며느리 노릇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게 불만이면 이혼하자’고 더 역정을 내며 분개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부모 외에 아내와 자식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 자신의 역할이 자식노릇만 있다고 믿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이러한 남자들은 책임감이 강하다. 경제적인 능력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현가족보다 원가족에 대한 관심밖에 없다. 부모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결국 ‘효도’는 인생의 지상과업이 되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부모에 대한 극진한 효심 때문에 부부가 이혼하게 된다면, 매주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부모가 좋아하는 음식에 옷을 해드리는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혼하고 부모에게 걱정 끼치는 것이 어떻게 효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비록 부모에 대한 도리가 부족하더라도, 부부간에 정이 있고 자식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역할을 원만히 한다면 그보다 더 큰 효도가 있을까? 사람들의 지나친 효심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린 시절 부모의 고됨과 힘겨움을 지켜봐야했던 자녀들의 아픔이 담겨진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 무의식의 영역을 살펴보아야 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회복하고 싶었다.
7살 때 기억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큰 형님이 울자, 어머니는 야단을 치시며 어디서 남자가 우냐고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형님 둘은 울지 않고 상여를 따랐다. 막내였던 난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불안해서 울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며 잊히지 않는다. 분주한 틈 속에서 어머니의 상복차림과 형님들의 굳어있는 표정, 동네사람들의 측은한 눈빛, 우리가족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외롭고 불안한 시간들이었다. 아버지 장례식을 치른 이후, 49제를 지내고 우리가족은 서울로 이사를 하였다. 어머니는 고향에 미련을 두기 싫었던 것 같다. 서울에 와서 어머니는 옷 수선 집을 시작하였다. 우리 삼형제는 공부를 잘하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일을 마치고 저녁마다 끙끙 앓으시는 어머니의 노고에 보답하는 길은 우등생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열 살이 되는 무렵 난 결심했다. 열심히 살고 돈도 많이 벌어 어머니께 효도 할 것이라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그림을 잘 그려서 우수상도 받았을 뿐 아니라 공부도 늘 일등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의 모습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난 그것이 좋았다.
그렇게 중․고등학교에서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유명의대도 졸업했다. 현재는 의사로 일을 하고 있다. 오늘도 상담을 하면서 어머니를 얘기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어머니는 나의 전부요, 하늘이었다. 아내는 불만이 많았지만 내 인생에서 어머니를 빼고 그 무엇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마음이 저미고 아려오는 마음 저 깊은 고통을 느꼈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 어금니를 꽉 다문 어머니의 표정은 나에게 공허감이 되었다. 난 불안하고 외로웠지만 어머니의 그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많은 시간동안 절규하며 몸부림치고서야 난 알 수 있었다. 어머니를 내 안에서 보낼 수 있었다. 살부살모(殺夫殺母)라고 했던가? 내안에서 어머니에 대한 아픔을 해소하고 나니, 어머니가 제대로 보인다.
난 내가 없었구나! 내 마음속엔 어머니의 아픔과 희생, 그리고 연민의 감정만 있었구나! 그래서 어머니에게 효도하겠다고 했던 것이 내 연민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아내에게 참 미안하다. 참 많이 무심했다. 나와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그녀의 마음을 챙겨주지 못했구나! 이제 하늘에 구름이 걷힌 듯 맑게 내 마음이 보인다. 참 다행이다. 내가 이렇게 마음 속 먹구름을 씻을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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