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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부부심리상담 , '구박당하는 며느리'

p&cmaum 2023. 8. 17. 10:09

구박당하는 며느리

글.박노해(마음)

용서할 수 없다.

 

그녀는 혼자 부부상담을 받기 위해 상담센터를 방문하였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표정이 그동안 결혼생활이 쉽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첫 상담이라 긴장도 되었겠지만 그녀의 첫마디에서 분노감이 배여 나왔다. “처음부터 시부모님은 저희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시부모님은 못생긴 며느리 보기 싫다나요. 처음부터 환영받지 못한 며느리였습니다. 첫 인사드리고 새벽 내내 울었지요.” 그녀는 아직까지 결혼식을 올리지도 못했다. 남편을 만나게 된 계기는 매우 우연한 기회로 시작되었다. 시누이와 그녀가 친구다. 우연히 시누이 집에 놀러갔다가 남편과 마주쳤고 이후부터 그녀가 좋다며 남편이 따라다녔다. 그녀는 끝까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남편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자, 그런 열정이면 책임감이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동거를 시작하였다.

그 일 이후 그래도 무난하게 부부는 결혼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추석명절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그녀의 시부모는 식당을 운영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명절이다 보니, 손님도 없어 일찍 명절음식을 하고 계셨다. 서로 웃어가며 음식도 만들고 그렇게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어머니는 음식은 다되었으니, 방에서 쉬라고 하시고 가게 나가셨다. 남아 있는 사람은 그녀, 남편, 시누이, 숙모가 있었다. 그러다 숙모가 부엌에 송편을 만들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식당에 나갔다 들어오면서 숙모는 일을 하고 있는데 방에서 웃고 떠들며 TV보고 있는 며느리가 못마땅했는지 너는 어른이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데 쉬냐며 야단을 쳤다. 추석명절 내내 가족모두 어색한 분위기였고 시부모는 돌아오는 길에 인사도 받지 않았다. 이후 시누의 중재로 시어머니의 오해는 풀렸고 겨우 사이가 회복이 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너무나 서운했던 것이다. 처음 찾아뵌 날도 못생긴 며느리 싫다는 소리도 참고 명절에 찾아뵈었는데 잠시 방에서 쉬고 있는 사람 죽을 죄지은 사람처럼 무시하고 다그치는 시어머니가 용서가 되지 않았다. 며칠 후 시어머니에게 전화연락이 왔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목소를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오늘 안으로 찾아오지 않으면 앞으로 안본다고 언포를 놓았다. 어쩔 수 없이 찾아갔지만 사람 불난 집에 부채질 하듯이 어름 장을 놓으며 다음부터 불만 있으면 말로 하라는 것이다. 서운하고 서운했지만 이 사람들 자기잘못은 모르는 사람이구나 하고 포기하고 무시하고 지냈다.

 

갈수록 태산이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다. 남편 회사 동료 결혼식이 있었다. 남편과 그녀가 식장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식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시부모가 급히 보자는 소리에 식사도 못하고 찾아뵙게 되었다. 그날따라 시부모는 식사대접 한다며 횟집에 가게 되었다. 시부모는 식당사장을 아는 눈치였지만 그녀를 소개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긴장된 분위기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시작하였다.

시어머니께서 회를 집어 주시고 반찬도 집어주는데 그녀는 젓가락질이 서툴렀다. 그때 시아버지가 갑자기 발끈하면서 “너는 어른이 그렇게 음식을 주는데 받아먹기만 하느냐”,며 호통을 치는 것이다. 시아버지는 그녀가 젓가락질 못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차에 그 점이 발견되자, 이번엔 시아버지가 노발대발하며 그녀를 면박주고 야단친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울자 시아버지는 첫날부터 울더니, 또 우느냐하며 이제 오지 말라고 하였다. 그녀는 남편과 시어머니가 사과에도 불구하고 용서할 수 없었다.

이후 남편과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 얼마 후 임신이 되고 그래도 부부로 살라는 운명인가 보다, 생각하였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이, 갈수록 태산이다. 산부인과 의사의 오진으로 임신이 아니라고 하여 감기약을 먹고 말았다. 임신 사실을 알고 병원에 가니, 낙태를 권유하였다. 정말 무책임하고 상처를 받았다. 오진병원에서 그날로 낙태를 하자는 것이다.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종합병원에 가니,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지만 아직은 괜찮다고 하였다. 다행이 낙태는 면하고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번엔 시어머니 식당에서 직원이 그만 두었다고 접수대에서 계산하는 일을 도와달라는 것이다. 입덧도 심하고 못한다고 하니, 남편은 그래도 부모님이 도와달라는데 어찌 모른척하겠나, 도와주라는 것이다. 정말 너무 너무 야속했다. 그렇게 일을 도왔다. 그러나 죽기보다 싫은 상황은 버틴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는가? 그러다 아이는 조산으로 제왕절개하고 말았다. 아이는 무사히 태어나 잘 커고 있지만 남편과는 이제 헤어지고 싶다.

 

이젠 벗어나고 싶다.

 

친정부모님은 그녀를 늘 구박하였다. 언니라는 이유로 동생들을 돌보고 희생하라는 것이다. 그녀는 늘 서운하고 억울한 심정으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얼마 전 시부모님에 대해서도 너무 힘들어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의논을 했더니, 여동생 하는 말이 자신은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며 참고 살란다. 친정부모님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혼자서 쓸쓸히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라고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준 적이 없었다. 상담 중 그녀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오열하며 서러워한다.

그녀는 시부모와 남편, 친정부모와 형제들로부터 모두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이제 그녀가 누구에게 내 마음을 보이고 위로받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늘 구박덩어리 인생이다. 남편도 자신을 위한하다고 하지만 사실 비겁하다. 그는 뒷짐만 지고 있다. 그녀는 허탈하다 못해 이젠 삶이 싫다. 이젠 조용한 곳 어디 사람 없는 곳에서 사람 생각 없이 살고 싶다. 그것이 그녀가 바라는 작은 소망이 되어버렸다.

그녀가 벗어나길 소망하지만 그녀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죄책감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남편을 외면하면 남편이 안쓰럽고, 친정부모를 외면하면 자식으로 자책하게 된다. 그녀의 마음 속 올가미는 그녀 스스로가 지고 말았다. 그녀가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그녀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은 무시와 감당이다. 그녀는 이후로도 많은 상담과정을 거쳤다. 그 시간동안 울분을 토하고 절규하며 내면 깊숙이 억압된 분노와 서러움을 발산하면서 자기 스스로 자신을 처벌하고 있음을 통찰하였다.

 

친정이 더 싫다.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사실 예전에는 여자가 결혼하면 귀먹거리 3년, 봉사 3년이란 말도 있지만 요즘이야 위의 사례와 같은 경우가 있을까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아직까지 고부갈등은 심하고 시부모에게 구박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경우는 시부모가 며느리 눈치를 살피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요즘 젊은 세태를 비판하는 글들을 보게 된다.

본 사례의 등장한 며느리의 억울함, 절박함은 이해가 되지만 그렇게 지속적으로 구박을 당하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늘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녀는 결혼당시부터 반대하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외모운운하며 그녀의 자존심을 완전히 무시당하며 말이다. 그녀는 이후에도 예절문제, 부모의 경제적인 협조문제, 명절에서 생기는 갈등 등등 수없이 많은 고초를 당하면서도 결국 시부모의 뜻을 들어주고는 면박을 당하고 말았다. 어찌 보면 시부모는 며느리를 학대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녀는 어려서 친정부모에게 이해받아본 경험이 없었다.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고모부 내외가 왔었다. 그렇게 즐거운 한때를 보낼 무렵 다들 나른한 오후 낮잠을 자고 있는데 고무부가 내방에 자고 있는 나에게 접근을 하였다. 그리고 성폭행을 당했던 나,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너무 놀란 나머지 고모부 가시고 어머니께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못들은 척하며,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곤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지냈다. 이후에도 고모부가 오는 날에는 그의 음흉한 눈길과 여지없이 찝쩍거리고 정말 지긋지긋한 시간들이었다.

그녀는 결혼하면 내 편이 되어주고 의지할 사람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친정에서 이해받지 못했던 그 마음 남편과 시부모는 알아줄 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정말 오랜 시간동안 분노하고 절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부모에 대해서 정신을 잃을 만큼 분괴하고 또 남편에게서도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고모부에 대한 분노와 친정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은 정말 오랜 시간 분괴하고 폭발하는 그래서 절규하는 시간을 필요로 하였다. 그녀가 상담을 받으며 “이제 내 인생을 살아야겠어요.”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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