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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부부상담센터 , '나는 위기의 남자입니다.'

p&cmaum 2024. 10. 4. 14:45

나는 위기의 남자입니다.

  글. 박노해(마음)

 

나는 위기의 남자다. 40대 중반까지는 내가 아내를 휘어잡으며 군림하였다. 그러나 근래에 50세 전후로 역전되고 말았다. 아내가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장도 이만저만 강한 게 아니다. 예전에 내가 아내에게 했던 말투로 "그래서, 네가 해준게 뭐가 있는데, 뭐 어쩌라고, 헤어지고 싶으면 좋아, 재산은 반으로 가르고 헤어져!" 아무리 생각해도 막 나간다. 이제는 나를 아예 자기의 친구나 아랫사람 대하듯 한다.

 

50대에 접어들고 보니, 아내가 주장도 많아지고 밖으로 돌면서 친구들 모임도 잦아져 이제는 밥이나 집안 살림에 아예 관심도 없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자업자득이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억울하다. 나는 그동안 가족을 위해서 한평생 희생하며 살아왔다. 처자식들도 내가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았다면 지들이 어떻게 오늘의 삶의 여유를 누릴 것인가? 턱도 없는 소리다. 처자식들이 지들 잘났다고 하지만 다 배부른 소리다. 지들이 돈 없으면 어찌 그런 여유를 부리겠는가?

위 사례는 자칭 '위기의 남자' 라고 주장하는 50대 한 내담자의 이야기다. 상담실을 들어서는 모습은 권위적이면서도 매우 예의가 반듯하고 인품을 지키려 노력하였다. 또 말투는 공손하고 정중하였지만, 방어적이었다. 결국 자신의 부족한 부분은 보이고 싶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위기의 남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시절 아이들은 굶주림과 열악함, 부족함의 연속이었다. 그들에게 삶이란 역경과 도전을 통하여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위기의 남자는 자신의 열악한 삶을 극복하기 위하여 도전하였다. 그리하여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것이 사랑이다.

위기의 남자는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렸다고 호소하였다.

"선생님, 전 아내가 자신은 억울하다며 호소할 때 겁이 나고, 이제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나를 버리고 떠날까 말이지요. 난 어려서 부모님의 정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늘 술, 주사와 폭력으로 자신의 고생을 한탄하셨고, 저는 그에 대해 힘겨워하시는 어머니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며 성장했지요. 전 어머니에게 자식의 성공과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제가 성공하기 전에 돌아가셨고 그 허탈감은 무엇으로도 채우기 어려웠습니다."

위기의 남자는 이제 아내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그동안 일에 몰두하면서 풀었던 마음 속 외로움과 불안감을, 나이가 들면서 점차 아내에게 의지함으로써 덮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년의 아내는 "더 이상은 못 산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 그동안 참고 산 것도 지긋지긋하다. 이번 참에 헤어지자, 그것도 안 되면 떨어져 살자, 내가 숨 막혀서 못살겠다."

그러나 위기의 남자는 떨어져 사는 것도 두려웠다.

"선생님, 저를 도와주세요. 아내를 설득해주세요. 아내와 같이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상담실을 찾은 위기의 부부, 그동안 잘 지내보겠다고 결심했었건만 또다시 갈등을 했던 모양이다. 아내의 말이

"이 사람 정말 불쌍해요. 이제는 나에게 의지해서 떠나지 못할 것 같아요. 두렵다고 하는데 정말 불쌍하고 초라하네요. 그러면서도 지난주에는 나에게 반찬 투정을 한바탕했어요. 내가 자기를 위해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나요. 지금 심정으로 내가 자기 생각하게 생겼어요? 나도 이제 좀 자유롭고 싶어요."

위기의 남자, 그는 젊어서는 현재 젊은이들이 흔히 말하는 간 큰 남자였다. 아내에 대한 배려나,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불안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하고 그저 돈이나 많이 벌면 그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왔던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남자아이에게 엄마는 하늘이다. 그러나 그 하늘이 항상 어둡고 구름만 끼고 비만 내린다면 아이는 움츠러들며 희망을 포기하고 마음 속으로 숨어버린다. 아이는 더 이상 세상과 만나지도 않고 교감도 거부하며 고립되고 만다. 이러한 아이에게 보이지 않는 믿음이란 사치일 뿐, 눈에 보이고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이 곧 최선이고 믿음이다. 위기의 남자가 살던 어린 시절에 믿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굶주림의 극복이었다. 그래서 성공과 돈 그 외의 것은 믿음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위기의 남자가 유년 시절에 상처받은 경험은 현재도 미래도 성취 이후도 채우지 못한 빈자리로 남아있는 것이다.

박노해차상숙부부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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