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차상숙심리이야기

부산성인심리상담 , '난 긍정적이고 성실한 남자다.' 본문

카테고리 없음

부산성인심리상담 , '난 긍정적이고 성실한 남자다.'

p&cmaum 2024. 3. 22. 10:15

난 긍정적이고 성실한 남자다.

 

글.박노해(마음)

 

긍정적으로 삶을 사는 사람을 우리는 성공적인 삶을 산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럴까? 긍정적이면 모든 것이 좋은 것일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긍정적인 것은 좋은 것이라고 그러나 무조건 긍정적이어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경우는 수없이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우는 심리학적인 용어로 ‘자기합리화’라고 한다. 부정적인 상황임에도 ‘잘 될 것이다.’, ‘괜찮을 것이다.’, ‘좋게 생각해라.’ 와 같이 말이다.

사실 자기합리화는 자기위로이다. 내가 스스로 나의 부족한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없는 마음을 수용하기 위해서 벌이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합리화가 나의 마음의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멀게 하니, 눈은 있으되, 보지 못하고 귀는 있으되,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문이 닫힌 30대 후반 어떤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난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나는 지금까지 나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며 살았다. 솔직히 말하면 합리화하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 나 자신의 생각에 대해 믿고 신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내 생각이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결혼이다. 결혼을 하고 아내에게 나의 성실함은 부족함이 되었다.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는 나의 성실함을 알아주지 않았다. 늘 부족하다며 지적하고 질책하며 하소연하였다. 왜일까? 내가 아내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집에서는 아내가 원하는 것, 청소, 설거지, 아이돌보기, 정리정돈 등 다른 집 남자들이 하지 않는 것까지 정말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에 차지는 않았다.

그러다 아내와 폭발하며 싸웠다. 그날은 싸움의 수위가 조금 심했다. 아내가 하는 말이 “이혼하자. 이렇게는 못산다. 당신은 일밖에 모르고 늘 술 마시는 그런 모습 보고 못산다.”, “그 말 좀 하지말자. 이혼 얘기만큼은 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꼭 싸움만 하면 이혼 얘기부터 하느냐, 정말 미치겠다.”, “그러니까 이혼하자. 나는 당신에게 상처만 주는 존재다. 그러니 이혼이 상책이다.” 그때부터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감정이 너무 격해지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다. “그래, 그래 헤어지자." 그리고서 나는 식탁위에 있던 음식을 뒤집고 말았다. 그리고 격한 감정에 싱크대에 있던 그릇이란 그릇은 모두 깨트렸다.

그날이후 우리부부는 3주째 대화가 없다. 아내도 나도 말을 하기 두렵다. 서로 어떻게 말을 풀어야 할지 그리고 그 일 이후 서로에게 받은 상처로 좀처럼 마음이 회복되지 않는다. 전 같으면 그래도 아내에게 먼저 사과하고 잘해보자고 했을 텐데 그러고 싶지가 않다. 내 마음도 아내가 많이 미운가 보다.

 

“착한 아들이 될게요. 어머니!”

 

그는 정말 객관적으로 보아도 성실한 사람이다. 집안일도 아내를 위해 도와주고 뿐만 아니라, 퇴근이후에도 아이들 씻기고 잠재우는 일에도 열심이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에게 만족을 못한다. 언뜻 보기에 “아내가 너무 한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맞다. 아내도 남편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남편에게 이것저것 원해서 남편이 알아주면 자신의 심지에 꼭 맞는 마음을 몰라준다는 것이다. 꼭 어린아이 투정처럼 말이다.

아내이야기는 접어두고 남편의 성실함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남편의 성실한 태도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남편은 자신이 성실하고 자상했던 원인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신의 긍정적인 삶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 성실함의 시작은 그가 7살 무렵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둘째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다.

나는 어머니가 배다른 형과 누나들의 빈정대는 말투나, 멸시 썩긴 비웃음을 지켜봐야했다. 불쌍한 어머니에 대한 애절함과 분노감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공부를 하기를 마음먹었다. 또 어머니 걱정 끼치는 아들이 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난 밝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가 되었다. 늘 적극적이고 공부도 운동도 뒤지는 법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들의 관심은 당연한 것이지 않았을까? 난 그렇게 내 아픔을 묻어둘 수 있었다.

학교 운동회 날이었다. 전교1등이란 이유로 선생님들의 어머니에 대한 관심은 평범하지 않았다. 집에서 너무나 초라했던 어머니가 학교선생님들에게 존경받고 빛나는 어머니가 되었다. 난 그렇게 어머니에게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청소년기 무렵 어머니는 나를 두고 떠나셨다. 그때까지 어머니는 자신이 암에 걸렸음에도 나나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후부터 난 과거는 모두 잊었다.

 

여보! 당신을 어머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결혼할 당시, 아내가 힘들어하고 우울해 보이는 그리고 고독해 보이는 모습이 좋아서 그런 아내에게 기쁨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결혼을 결정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공부할 때처럼 그렇게 열심히 일도 하고 집안일도 도왔다. 그렇게 아이도 남매를 두었으니, 얼마나 행복했는지, 예전 어머니 계셨을 때 느꼈던 그런 행복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아내는 우울하고 늘 불만에 가득한 사람이었다. “늦다.”, “술 마시지 마라.”, “일찍 들어와라.” 등 끝이 없었다. 그도 나와 같이 부족한 여자였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나에게 기대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운동회에 오신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었던 선생님들의 존경심을 아내에게는 줄 수 없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아내를 어머니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머니를 기쁘게 했던 것처럼,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가 원한 것은 그가 예전 어머니에게 성실한 아들로 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내는 아내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따로 있었다. 그는 점점 자신을 잃고 갈등할 시점에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긍정적이고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모습 이면에 그는 자신의 아픔으로 외면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만났을 때, 그는 진정 아파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유년시절의 힘들었을 아픔을 그제야 느끼고 위로할 수 있었다. 누구나 아픔은 있다. 그런 아픔은 부정적이라고 묻어두고 피해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그런 외면은 사람을 앞에 두고 없는 듯 행동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없어지겠는가? 그는 그렇게 보름을 넘게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한 참 시간이 지난 뒤 그는 여름철 태풍이 지난 뒤, 허탈한 미소를 보이며 내 앞에 앉았다.

 

 

 

 

박노해차상숙부부심리상담센터

051-332-5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