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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 , '부적절한 대상에 대한 동일시'

p&cmaum 2022. 12. 14. 13:29

부적절한 대상에 대한 동일시

 

글.박노해(마음)

 

부부가 자식을 두고 못난 것은 아내(남편)를 닮고 잘난 것은 나를 닮았다며 주장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배우자에 대한 불만을 자식의 부족한 면을 지적함으로써 수동 공격하는 뜻도 있다. 하지만 굳이 서로를 탓하지 않더라도 자녀가 부모를 닮은 것은 부모가 아무리 부정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 놈은 누구를 닮아서 저모양이야" 부모가 자녀에게서 부족한 점들을 보게 될 때 실망감을 금치 못하여 부정하기도 한다. 오히려 "젊은 놈이 그 나이 돼서 그 정도 밖에 못해" 하며 자식에게 타박주기도 한다. 그러나 자녀가 누구에게 배웠겠는가? 부모가 낳고 키웠으니, 닮은 사람은 부모이지 않겠는가?

이랬거나 저랬거나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어쩔 수 없이 닮는다면 부모의 좋은 점만 닮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러자면 부모의 환경이 중요하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처럼 부모의 환경이 자녀의 기반이 되어 주어야 한다.

15살 된 소년이 상담센터를 방문하였다. 소년은 매우 권위적인 아버지와 짜증스러운 성격의 어머니의 보호를 받고 성장하였다. 소년의 부모님은 신혼 초부터 갈등이 심했다. 싸움소리가 안 들릴 땐 이웃에서 "오늘 저 집 왜 이렇게 조용해" 하며 의아해 할 정도였다. 소년의 어머니는 남편과 다툰 후 자녀에게 화풀이 하곤 하였다. 뿐만 아니라 동생이 태어나면서 소년은 어머니의 사랑은 기대할 수 없었다. 간혹은 아우타기를 이유로 동생을 밉다고 호소한 적도 있지만 어머니는 냉정하게 잘랐다. 아이에게 어머니의 사랑은 언감생심 감히 요구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까지 어머니 눈치만 살폈고, 사춘기에 접어들어서도 감히 어머니에게 불만을 제기하지 못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주도적일 수 없었다. 친구들이 싫어할까? 하며 뭐든지 시키는 대로 했어야 했다. 그런 그가 무엇에서 배짱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겠는가?

한 번은 40대 중반의 남자가 방문했었다. 그는 지하철, 버스 등에서 여자들에게 몸을 스치며 성적인 흥분을 느끼는 관음증이 있었다. 창문을 통해서 몰래 훔쳐보는 경우와 슬쩍 스치듯 쾌감을 느끼는 이들의 공통된 정서적 경험은 그들의 유년시절 주요양육자가 매우 냉정하고 엄격하다는 점이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결핍되어 있다. 그들은 사랑에 굶주렸으나 상대방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사랑을 요구할 수 없다. 사랑에 대해 실패경험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아동의 애착시기, 0세∼3세 때 주요양육자(모)와의 정서적 경험은 아동의 건강과 정서, 관계, 인지, 성정체성 등 다양한 심리적, 신체적인 패턴(특성)으로 자리 잡는다. 청소년기 혹은 성인기에 남자들이 여자의 속옷을 훔치거나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유사한 행동을 아동기에도 볼 수 있다. 이때의 행동은 성적인 특성으로 표출되기보다 인형, 손수건, 엄마의 머리카락, 이불, 베개 등 다양한 대상물을 집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아이가 엄마와 분리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양육환경으로 인해 아이는 부모에 대한 불신,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세상을 좀처럼 믿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사랑을 기다리고 사랑을 기대하며 아픈 마음에 머문다. 특히 냉정한 양육자, 엄격한 양육환경에서 성장한 아동은 성인이 되어 관음증, 성도착증, 노출증, 지하철 등의 공공장소에서 일어나는 성추행 등의 양상을 띠기도 한다. 그들의 이상행동의 근본욕구는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다. 사람을 믿고 마음 푹 놓고 사랑받고 싶었지만 그들은 여러 사정과 이유로 눈치를 살피며 몰래 사랑을 훔쳐야 하는 그런 비굴한 처지가 된 것이다. 이들은 양육자에게 사랑받고 싶지만 주장할 수 없어 은밀한 동일시를 한 것이다. 여자의 속옷을 통해 엄마의 품, 따뜻함에 대한 미해결된 마음을 충족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말이다.

그런 그들에게도 해방의 시기가 온 것일까?

성이란 모의 자궁처럼 따뜻하고 또한 안전하며 짜릿하다. 성이란 익숙하고 평안하여 집착하고 싶은 마음이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근본욕구인 미지에 대한 갈망과 도전, 모험 때문에 우리는 독립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어 한다. 양육환경이 안전했던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내면에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에 대해서 탐구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삶의 지향이 인간의 본성이며 근본이다. 그렇다고 부모의 사랑이 불안하고 결핍되며 박탈된 경우라도 염려할 필요 없다. 단지 차이점은 아픈 상처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 애도의 시간은 우리를 더욱 큰 재목(木)이 되게 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큰 시련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쓰임새 있는 자로 쓰기 위함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부모의 안정된 사랑을 받고 성장한 자녀는 그 사랑을 타인과 나눔으로써 감사함을 되돌리는 것이다. 또한 아픔이 큰 우리는 그 아픔을 애도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더 큰 사랑을 발견하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믿어야 한다. 믿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관심을 통해 미지에 대한 자아실현도 이루게 될 것이며 또한 자기내면의 참된 삶의 뜻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은 우리 삶의 전부다.

사랑은 너와 내가 함께 마음을 믿고 교감하는 합일체이다.

사랑은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이다.

사랑은 내 가족에 대한 수용이다.

사랑은 신과 합일하는 것이다.

 

 

박노해차상숙부부심리상담센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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