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상담센터 , ' 애살많은 여자아이 이야기 '
애살 많은 여자아이 이야기
글. 박노해(마음)
금요일 저녁, 너무 홀가분한 기분이다. 일주일 중 드디어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그런 시간이다. 아내에게 연락하니, 아이들 친구 집에 있다는 것이다. 또래아이들끼리 어울릴 수 있도록 함께 시간을 낸 모양이다. 곧 도착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10분 거리라 곧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20분이 지나도록 아이들과 아내가 친구 집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같이 즐겁게 외식할까 하는 생각인데 조금 짜증이 밀려옴을 알아챘다. 전화를 한 번 더 하려니, 내려오는 소리가 난다. 우리아이들뿐 아니라, 친구들도 함께 내려오는지 시끌벅적하다. 짜증은 잠시 숨겨두고 친구의 엄마와 인사를 건네고 식당으로 향했다. 입학을 앞두고 있어 엄마들은 아이들끼리 친한 관계가 되도록 여러모로 애쓴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른들은 저녁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아이들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놀이터를 오가며 신이 나서 야단이다. 담소를 나누다 말고 친구엄마의 4살 난 작은 딸의 행동이 심상치 않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운전을 하고 오는 중에도 딸아이는 나에게 관심을 받기 위함인지, 애교를 떨고 귀여움을 독차지하고자 분주하여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식당에 와서는 본격적으로 관심을 독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내 앞에서 애교를 떨며 “아저씨! 나 한번만 봐 주세요.” 무언의 절규를 몸으로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이의 엄마는 민망한지, 아이에게 지적하고 질책해보지만 통제는 이미 불가능한 상태였다. 아이는 내게 관심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옆 테이블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심지어 아저씨의 볼에 뽀뽀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가 난처해하자 아이는 잠시 놀이터에서 노는가 싶더니, 다른 테이블로 이동하여 아저씨를 유하고 있었다.
아이의 이러한 행동은 관심에 대한 처절한 절규라고 할 수 있다. 딸아이는 위로 오빠가 있었고 그 오빠가 우리 집 아이와 친구였다. 친구의 부모는 딸은 안중에도 없고 아들은 금지옥엽(金枝玉葉), 애지중지였다. 아들에겐 밥 하나 하나 다 챙기고 사랑이 넘치도록 챙기면서도 딸에게는 “안 돼! 안된다고 했지!”의 연속이다. 친구아이 엄마는 딸에 대해서는 무관심했고, 딸의 행동이 문제라는 걸 알지만 자신의 관심사에 빠져 딸아이 마음은 챙길 생각이 없었다. 4세 시기에 아이들은 엄마와 안정된 애착을 바탕으로 또래관계의 발전과 사회성이 향상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친구아이는 애착관계가 결핍되었는지, 지나칠 정도로 낯가림이 없고 낯선 사람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다가가며 사랑을 호소한다. 낯가림은 유아기로 접어들면서 아이가 낯선 환경에 대한 자기보호 차원에서 유발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아이가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경우, 아이는 낯가림 없이 사랑받기 위해 아무에게나 달려든다.
이러한 아이는 위험하다. ‘나영이 사건’이나 ‘김길태 사건’에서 보이는 나영이와 김길태에게 성폭행을 당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어른들에게 칭찬 듣는 아이들이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의 이면엔 그 아이들의 환경과 정서가 안정되지 않거나 결핍 혹은 박탈된 환경이라는 점이다. 결국 사랑받기 위해 다가선 행동이 김길태와 같은 사람들에겐 성폭행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김길태와 같은 사람도 상처받은 입장이고 그런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또 다른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사람이 사는 이유이고 의미다. 그러나 아동기에 부모와의 정서적 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면 아동의 삶은 비극으로 점철될 것이다.
박노해차상숙부부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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